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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는 다른 알람소리에 눈이 떠졌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햇볕에 절로 찌푸려지는 눈을 겨우 떠 시간을 확인하니 6시 45분. 5분 단위로 3번이나 울린 알람은 전날의 고된 임무에 지쳐 곯아떨어진 무쿠로를 깨우기엔 충분한 것이었고, 지난 밤 무쿠로가 돌아오기도 전에 잠들어버린 그의 연인, 사와다 츠나요시를 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나보다. 무쿠로는 세상 모르고 자는 연인을 바라보며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울컥 올라오는 화를 애써 꾹꾹 눌러 삼키며 츠나요시의 몸을 적당한 힘으로 흔들흔들-, 흔들어 깨우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츠나요시. 일어나세요. 사와다 츠나요시. 본고레!"

그렇게 5분쯤 시간이 흘렀을까, 또다시 요란한 알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조차 일어나지 않는 츠나요시에게 화를 내는 경지를 넘어 경의를 표할 지경이 되어버린 무쿠로는 깊은 한숨을 쉬며 우선 알람을 끄고 핸드폰을 처분하자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나중에 아르꼬발레노에게 혼나도 모릅니다-, 라고 작게 콧노래마저 부르며 핸드폰을 끄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파각, 하는 파열음이 나며 츠나요시의 약정이 8개월가량 남은 핸드폰은 더이상 핸드폰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츠나요시의 허리도 더이상 제 구실을 할 수 없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심하게 걷어차였고,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진 츠나요시는 그제서야 느릿하게 눈을 꿈벅이며, 5분만 더... 따위의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하며 무쿠로에게 모진 매질을 당했다.

"그래서, 몇달만에 겨우 얻어낸 휴가 첫날부터 그 시끄러운 알람소리로 난 깨운 의도가 도대체 뭔지 들어나 보죠."

부서져 더이상 제 구실을 하지 못할 핸드폰을 머리에 얹고 두 손을 위로 올린 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츠나요시를 내려다보며 무쿠로가 특유의 도도한 미소를 얼굴 가득 떠올린 채 물었다. 츠나요시는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대답. 하세요, 츠나요시."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무쿠로의 얼굴에 히익-! 하며 10년 전에나 냈을 법한 괴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떠는 츠나요시였지만, 겨우 얻어낸 두 사람의 휴가 첫날 아침부터 알람을 맞춰 무쿠로를 깨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까지 그 이유를 숨기고 싶다면, 나도 더 묻지는 않겠습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곤 일어나 방을 나가버리는 무쿠로의 모습에 길고 긴 한숨을 내뱉은 츠나요시는 그제서야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핸드폰을 바라보며 절망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이 네 생일이라고, 널 축하해주기 위해였다고, 어떻게 말하겠어..."

어떻게든 핸드폰을 켜보려 손바닥에 액정을 대고 탁탁 쳐본다거나,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해보는 등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며 어떻게 해야 무쿠로가 화를 풀고 행복한 생일을 맞게 해줄 수 있는걸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쿠도 무쿠로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12시 종이 울리는 순간 쏟아지는 친구들의 생일 축하 메세지로 하루를 시작해 오전중에는 각종 쇼핑몰들로부터 생일 축하 쿠폰따위의 문자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다, 지루한 오후 시간을 견뎌내면 저녁땐 생일의 시작과 함께 자신을 축하해준 친구들과 저녁식사와 함께 가볍게 술을 마시며 선물을 받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는 츠나요시의 세계 속 사람들과는 달리 생일 하루, 어디에도 가지 않고 이불 속에 처박혀 하루종일 잠을 자고는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서도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세지 따위는 오지 않았다.

'전에 생일 축하를 해줬을 때 엄청나게 화를 냈었지.. 무쿠로...'

몇 년 전엔가, 무쿠로와 사귀게 된 첫 해의 6월 9일 아침, 츠나요시는 밝게 웃으며 무쿠로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선물을 건냈었다. 물론, 그 선물을 받아들며 맑게 웃어줄 것만 같았던 무쿠로는 오히려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선물을 내미는 자신의 손을 쳐냈었다.

"왜 생일따위를 축하해주는건지, 전혀 모르겠군요. 본고레."

그 일로 츠나요시는 무쿠로가 자신이 태어난 것에 대해 절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모자란 머리를 쥐어짜내 무쿠로의 생일을 행복하게 해줄 완벽한 계획을 짜두었으니까.

한동안 문 안에서 거실쪽의 눈치를 보던 츠나요시는 최대한 조용히 문을 열었다. 마치 임무를 나갔을 때와 같은 신중함. 그러나 그런 조심스러운 행동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거실에 무쿠로는 없었으니까.

"일단...무쿠로가 없으니 다행인건가..."

하려던 일을 하기 위해선 고양이처럼 언제 어디서 소리도 없이 나타나 집안을 돌아다니는 연인이 없는 편이 좋을테니까. 자신이 부엌에서 뭔가 하고 있으면 분명 뒤에서 소리없이 나타나 가차없이 걷어차여버릴 것이다.

하루와 쿄코로부터 미리 받아둔 케이크의 레시피를 꺼내 들었다. 밀가루..설탕..계란에 버터... 재료를 찾기 위해 선반이며 냉장고를 뒤져보지만 재료를 찾는 일부터 쉽지가 않다. 츠나요시도 무쿠로도 살림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데다 집에 머무는 일도 극히 적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적기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 일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침대나 소파정도를 빼고는 생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집의 냉장고에서 계란이며 버터를 찾고, 선반에서 밀가루를 발굴해 내는 일이 가능할리 없다. 물만 가득한 냉장고에서 츠나요시가 겨우 건져낸 것은 언제 시켜먹었던 것인지 모를 배달음식과 말라 비틀어진 야채쪼가리들뿐...

'맙소사...'

츠나요시는 절규했다. 무쿠로 몰래 쿄코들의 집을 들락거리며 겨우 빵의 형태를 갖추도록 구울 수 있게 된 케이크는 반죽 단계부터 막혀버렸다. 무쿠로를 위해 차리려던 저녁상도 이래서는 분명 무리일 것이다. 결국 츠나요시는 그의 오른팔 고쿠데라 하야토에게 SOS를 요청해버리고 말았다.

로쿠도 무쿠로는 아침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기 위해 가벼운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초여름의 아침 햇살이 밝게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닥을 치던 무쿠로의 기분은 금새 회복했고, 편의점에 들어가 가볍게 초코음료를 사 마시는 것으로 완전히 평소의 웃는 가면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무쿠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어느정도 기분이 좋아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침엔 자신이 조금 심했던 것도 같다. 보통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걷어차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니 집에 들어가면 츠나요시에게 사과를 하고,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쇼파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 -라고 생각하며 집 문을 열어보니 분명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신발과 나란히 놓여있던 츠나요시의 구두가 없었다. 어젯밤 거실 쇼파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던 츠나요시의 옷가지들도 없었다.

'오호...감히 아침부터 나갔다 이거죠...?'

츠나요시가 최근 사사가와 쿄코의 집이나 미우라 하루의 집에 자주 들락거렸다는 것을 무쿠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가끔은 사랑스러운 크롬과도 단 둘이 만나 뭔가 작당모의를 펼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사와다 츠나요시와 자신의 말 한마디면 죽는 시늉이 아닌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귀여운 크롬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모른 척 넘어가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오랜만의 두 사람의 휴가 첫날 아침부터 급한 약속이 있는 것 마냥 알람을 여러개 맞춰두더니 자신이 나갔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집을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다면 그 도전을 받아 주는 것에 도리겠지요, 본고레.'

조용한 거실 안에 무쿠로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작게 울려퍼졌다.

그 사이 츠나요시는 본부로 출근해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고쿠데라를 닥달해 방금 문을 연 마트를 향해 달려갔다. 쿄코와 하루가 적어준 레시피를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렇게 두 사람의 친절한 레시피가 아닌 인터넷에서 급조해낸 레시피는 쿄코와 하루의 집에서 연습했던 방법이나 재료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레시피였기 때문에 츠나요시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다메함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10대째! 무쿠로녀석은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 10대째를 위해서라면 이 고쿠데라 하야토, 오른팔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왠지 만화였다면 반짝이 이펙트와 쫑긋 세운 귀, 불이 나도록 흔드는 꼬리가 보였을 듯한 고쿠데라의 모습에 츠나요시는 어색하게 웃었다. 고쿠데라의 합류는 아무래도좋은 선택이었나보다. 차례차례 카트에 쌓여가는 재료들은 왠지 요리의 ㅇ자도 모르는 츠나요시에게도 자신이 처음 보는 레시피로 요리를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장을 다 본 츠나요시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쿠데라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무쿠로의 눈을 피해 케이크를 구워내고, 모두와 계획했던 생일파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와있을지 모르는 연인에게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들켰다간 분명 크게 혼이 나고 1년 중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을 알기에, S랭크의 임무를 하는 듯한 각오와 긴장상태를 유지한 채 부엌에 당도했다. 아직 무쿠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듯 하다.

"휴우..."

"왜, 한숨을, 그렇게, 쉬는거죠? 사랑스러운 본고레."

어느새 다가온 건지 귓가에 들려오는 무쿠로의 목소리에 온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실직고하고 이렇게 된 이상 무쿠로의 무릎을 끌어안고 비는 한이 있더라도 계획을 실행하자는 기분이 되었다.

"아...ㄱ,그게...그그그그그그러니까 무무무무무무무쿠로...!"

말해서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심정으로 결국 계획을 이실직고했고, 무쿠로는...

웃었다...?

그렇게 무쿠로의 허락을 받고 다시 시작된 계획은 생각처럼 되는 일이 없었다.

"ㅁ,무쿠로...! 이거, 전혀 거품이 안나는데...!?"

한숨을 쉬며 가끔 도와주러 오던 무쿠로는 결국 식탁에 자리를 깔고 앉아 츠나요시가 뒤를 돌아 무쿠로를 찾을 때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도와주러 오는 것이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무쿠로! 이제 다 됐어!"

갓 구워낸 케이크 시트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오는 츠나요시의 발걸음이 위태로워보인다고 생각한 것도 한 순간,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시트는 츠나요시가 자신의 발을 밟고 넘어지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며 겨우 만들어낸 크림 속으로 직행해버렸고, 크림이 가득 담긴 볼은 안에 든 내용물과 함께 무쿠로의 얼굴로 직행해버렸고 말이다.

"ㅇ,이게 무슨..."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 깜빡, 깜빡.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소매로 얼굴에 묻은 크림을 문질러 닦으며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는 무쿠로의 얼굴에는 좀처럼은 보기 힘든 화가 깃들어 있었다.

"ㅁ,무...무쿠로...하하...ㄱ,그게...왜...네 머리 위에...가 있는걸...까..."

어색하게 웃으며 수건으로 보이는 물건으로 얼굴과 머리를 닦아주는 순간, 악취가 코를 덮쳤다.

"대체 이게 뭐죠, 본고레..!?"

수건이라고 생각했던 물건은 걸레였고, 크림을 뒤집어 쓴 직후까지만 해도 그저 놀람 정도의 감정이었다면, 이제 가벼운 빡침과 함께 어이가 가출한 듯한 기분에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난리란 난리는 다 쳐가며 깨끗한 수건을 찾아 얼굴을 닦아주는 조심스러운 손길과 그 모습에,

"노력 점수정도는 드리죠, 한심한 본고레."

라며 누그러진 한숨을 쉬었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딘가 풀린 듯 베시시 웃어버리는 연인의 따뜻한 미소에 결국은 가볍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마주보고 몇분쯤 웃었을까.

"하지만 본고레, 뒷정리는 해야합니다?"

내 그 말에 바짝 굳어서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 본고레의 모습에 푸스스 웃으며, 잠시 후 유치원생 커플마냥 거품을 가득 채운 욕조에 노란 오리를 띄우고 마주보고 앉아있게 되었다.

"사랑해, 무쿠로. 조금... 아니 많이 실패한 것 같지만, 생일 축하해."

가끔- 이런 생일도, 괜찮을 것 같군요. 뭐, 이런 당신이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거라는 말은 하지 않을겁니다.

아스민트_츠나무쿠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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